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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익선생묘
실학의 대가 성호 이익 선생은1681년 평안도 운산에서 태어나 그 이듬해에 선영이 있는 안산으로 와 평생을 안산에서 머물렸다. 유형원의 학풍을 계승하여 현실정치의 비판과 이상 및 사상을 널리 기록한 『성호사설』『성호문집』등 저서를 남겼으며 1763년 8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.
위치 : 안산시 단원구 화랑로 149 (초지동 604-4)
규모 : 관련 정보 없음
개장시간 : 06:00 ∼ 22:00
취급품목 : 식당가, 의류, 잡화류, 농수산물, 건어물 등
문의전화 : 031-481-2827(지역경제과), 031-411-1040(시민시장)
약도보기

유래

실학의 대가 성호(星湖) 이익(李瀷)선생은 평안도 운 산에서 1681년 (숙종7년)부친 이하진 (李夏鎭)이 유배 길에 운산에 와 있을때 태어났다. 이익 선생은 그가 평 생토록 떠나지 않고 거주 하며 학문의 커다란 업적을 이룰 수 있었던 경기도 안산군 첨성리(瞻星里:지금의 안산시 상록구 일동)라는 지명에서 『星(성)』자를 따라 그의 호를 지었다.

이익선생은 1705년(숙종 31년) 증광문과(增光文科)를 보았으나 낙방하고 이듬해
형 잠(潛) 이 당쟁으로 희생 되자 벼슬을 단념하고 안산 첨성촌 (지금의 안산시
상록구 일동)에 머물며 일생을 학문에 전념하였다.
유형원의 학풍을 계승하여 실학자의 중조(中祖) 가 되었으며 그의 학풍은 그후 안정복, 이가환, 이중환, 정약용 등에게 계승되었다.
이익선생은 학문을 깊이 연구하는 데에만 몰두하여 천문, 지리, 의학, 재정지방제도, 과거제도, 학제, 병제, 관제 등 현실적인 문제에 비판과 이상 및 사상을 널리 써놓은 성호사설(星湖僿說)을 비롯한 곽우록(藿憂錄), 성호문집(星湖文集)을 남겼으며 조정에서는 선생이 돌아가신 후에 학덕을 높이 평가하여 이조판서에 추서하였다. 선생은 1763년(영조 39년)에 83세로 세상을 떠났다.

위치 및 구조

그의 묘소는 수원-인천간 산업도로가 바라보이는 구릉상에 위치하고 있는데 묘소의 석물로는 묘비(墓碑)와 상석(床石), 향로석(香爐石), 망주석(望柱石)이 있다. 봉분의 규모는 600×550×220cm이다. 묘비의 재질은 오석(烏石)이며 전면에는 "星湖先生李公諱瀷之墓 贈 貞夫人 高靈申氏左 贈 貞夫人 酒川睦氏右"라 새겨져 있다. 이 비석은 공이 사후 204년이 되는 1967년에 건립되었 으며 규모는 옥개석이 90×60×50cm 이고 비신은 146×57×26cm, 기대석은 100×62×20cm 이다. 상석(床石)의 재질은 화강암으로 규모는 121×83 ×58cm이며 향로석은 39×28×39cm 이다. 망주석의 높 이는 165cm이다. 두향(頭向)은 북향으로 남쪽을 바라 보고 있다. 묘소로 오르는 길은 계단이 설치되어 있으 며 무덤 앞에 안내판이 있다. 묘소 우측에는 사당이 있다. 이익선생묘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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